질량 효과(Mass Effect, PC)
리뷰 2008/07/15 10:34바이오웨어는 북미에서 이제 몇 안남은 정통 RPG를 만드는 회사이다. 옛날 발더스게이트(Baldur's Gate) 같은 AD&D 룰을 이용한 시리즈로 한창 게임을 만들때부터 명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서, 스타워즈 구공기(구공화국의 기사들, Star Wars: Knights of the Old Republic)에 이르러서는 3D와 정통 RPG의 적절한 접점을 찾아낸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옥제(Jade Empire, 옥황상제)에서는 좀 변형된 느낌이 들었지만 질량 효과에서 이제 본래의 정통 RPG로 되돌아온듯한 느낌이다.
본래의 정통 RPG라는 건 크게 몇 가지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클래스의 역할 분담과 각 캐릭터들의 명확한 성격, 그리고 전체적인 이야기.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RPG들도 세상에는 널렸지만, 정통 RPG라는 건 원래 몰려다니며 싸우는 파티(party, team)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누가 해줘야 하고, 내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있는 구조를 뜻한다. 그 다음으로 캐릭터들의 명확한 성격과 그 캐릭터들의 쫑알쫑알대는 대사와 플레이어의 그 캐릭터들에 대한 호불호, 감정이입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팀의 일원으로써는 존재하되 특별히 하는 말도 없고 존재가치를 가질 수 없게 되면, 그 캐릭터는 팀원이라는 느낌의 존재가 아니라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전투에 필요한 도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스토리라면, 이건 바이오웨어의 가장 큰 단점인데, 모든 게임 스토리가 거의 똑 같다는 거다. 주인공은 항상 삐리리한 시작으로 거친 세상에 나서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숨겨진 힘(기억을 잃은 악마라던가, 악마의 자식이라던가, 신의 선택을 받았다던가)이 있고, 이런 힘을 활용해서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권한을 받게 되며, 결국에는 세상을 위협하는 악의 존재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는 플롯. 그리고 여기에 양념으로 선과 악의 수치를 두어서 사람들과의 대화에 선악 수치가 이동하다가 마지막 최종 순간 엔딩에 대사가 좀 바뀐다는 정도.
하지만 이번 질량 효과는 전에 만들었던 바이오웨어들의 모든 작품들이 가지고 있던 단점, 팀원과의 감정 교류는 있으되 결말이 없는, 다시 말해 이성 캐릭터와 사랑을 싹틔우는 스토리는 있으되 사랑의 결말(섹스)이 없던 단점을 보완해서 궁극의 섹스씬이 RPG 게임에 거의 전무후무할 전라 누드로 나온다는 것에서 모든 스토리의 문제를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내용에서 보자면, 클래스를 억지로 나누어 두기는 했지만 이 클래스들의 정확한 역할 분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건 총기류를 사용하는 모든 게임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가까이서 쏘나(권총) 좀 멀리서 쏘나(장총) 엄청 멀리서 쏘나(저격총) 하는 건 게임에서 보이는 거리나 실제 전투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별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고, 멀리서 쏴대는 총을 몸으로 받아내며 마법(biotic, 편의상 그냥 마법이라고 하자)을 써대나 치료를 해대나(technic)하는 것도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저 몰려다니며 같이 쏴대고 같이 피해대면서 쓰러진 놈들을 살리고 일으켜 치료해 계속 쏴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환타지와 같이 전열과 후열을 구분한다거나 다른 클래스의 위치(position)를 옮기면서 전략적인 전투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거다. (간혹 "저기 가서 엄폐를 해라!"고 명령을 내려도 별로 뛰어나지 못한 인공지능은 그냥 지가 알아서 거기 가서는 구경만 하는 일도 있다.)
게다가 군인(soldier)-기술자(Engineer)-술사(Adept)의 삼각 구도를 놓고 각각 전사-힐러-마법사에 대입하는 클래스 구분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문제를 가진다. 여기에 군인+기술자인 첩자(Infiltrator)라던가 기술자+술사인 센티넬(Sentinel) 같은 클래스들이 있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클래스의 명확한 구분이 부족해 만들어지는 역할 분담의 부재로 인해서 각 클래스는 죄다 총을 쏴대는 게임이 된다는 거다. 뿐만 아니라 기술자나 술사의 마법 기술들의 쿨타임이 보통 1분 가까이 되기 때문에 한두 개 기술을 써버리고 나면 그냥 다같이 총쏘는게 전투의 전부다. 뭐랄까, 억지로 끼워 맞춘든한 클래스와 기술의 종류가 아쉽다고 하면 될려나.
하지만 이런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질량 효과는 엄폐를 꽤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이건 전쟁의 나사들(Gears of War, GOW)에서 엄폐를 하면서 총을 쏘고 장애물(엄폐물)들 사이로 이동하면서 쏘는 것과 같은 식의 전투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이고, 거기에 전투가 끝나면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GOW가 그저 전투와 전투로만 점철되는 구조에 비해서 질량 효과는 전투와 전투에서 대화를 하면서 스토리를 진행하고 경험치를 얻는다는 점이 차별화 되는 것이고, 이것이 슈팅 액션 게임과 RPG와의 차이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전투가 너무 재미있어서 전투만 하는 방법을 따로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GOW를 해야하는 건가...)
게다가 이 게임이 RPG라는 걸 잊지 않게 해주는 다양한 미니 임무들은 질량 효과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맛을 만들어내는데 충분하다. 우주를 항해하는 와중에 "5함대로부터 전문이 들어왔습니다"라면서 "XX 행성의 연구소에서 연락이 끊겼는데 조사를 부탁한다"거나 "항해중이던 함선에서 구조 신호가 들어왔다"는 식의 긴급 미션을 주기도 하고 무시하고 지나가면 "야이 쇼키야, 나 삐졌다"하는 메시지도 날아와서 메인 스토리에만 몰입하는 플레이 방식에 제동을 걸어주기도 한다. 이런 작은 미션들을 모두 수행한다면 플레이 타임은 족히 20시간 이상 될듯하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으로, 아무리 빠져드는 이야기이고 우주 분위기를 물씬 살리는 훌륭한 설정이라고 해도, 메인 스토리가 너무 짧다. 처음 1단계에서 3개의 행성을 조사하고 나면 (각 행성은 대략 1~2시간 정도의 플레이타임을 가진다) 추가로 1개의 행성이 열리고, 그 다음에 다시 1개의 마지막 미션이 열리게 된다. 대략 잡스러운 부수적인 미션들을 버리고 메인 스토리만 따라간다면 5개의 행성에 약 10시간 정도의 플레이면 엔딩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짧은 플레이 타임을 보완하는 메리트가 하나 있으니, 앞서 이야기한 섹스씬을 여러 팀원 캐릭터와 한 번씩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번의 플레이는 필요하다는 것이고, 자잘구리한 잡 미션들도 꼼꼼히 하다가 보면 수여되는 훈장들도 게임의 수명을 '조금' 늘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RPG라는 것은 스토리를 다 알아버리면 재미가 감쇠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이 외에는 오블리비언(The Elder Scrolls IV: Oblivion)에서 배워 온듯한 상자따기 미니 게임도 굉장히 반복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져 있고, 대화나 게임 진행의 인터페이스도 원래 콘솔 버전을 PC로 이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불편함 같은 뚜렷한 단점도 없다. 이 정도 이식이라면, 단순 이식이라기 보다는 PC 버전을 위해서도 꽤 인터페이스를 고심한 모양.
리뷰랍시고, 장점이니 단점이니 줄창 늘어놓고는 있지만, 질량 효과는 기존의 구공기나 옥제보다 훨씬 발전된 바이오웨어의 RPG 개발 노하우를 보여주고 있다. 게임 매체들의 평균 점수가 90점이라는 건 이를 이미 증명하고 있으며 바이오웨어의 다른 게임들이 그런 것처럼 세계관이나 이야기, 전투 부분 어느 하나 크게 빠지는 것 없이 전체적으로 훌륭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눈에 띄는 큰 버그도 존재하지 않는다. (알려진 버그로는 현재 게임중 무기의 과열(overheat)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와 처음 실행이 되지 않는 두 개가 있으며, 다운되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없다.)
왠지 뛰어다니는게 좀 귀찮은 느낌도 있긴 했지만 그거야 내가 돌아다니는 걸 워낙 싫어해서 그런 거 같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질량 효과(XBOX360)가 2007년 올해의 게임(RPG of the Year)에 노미네이트 되었음에도 페르소나3에 밀렸다는 데 아쉬움을 느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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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2/1 - Mass effect의 올바른 번역은 '광역 효과'가 아니라 '질량 효과'가 맞습니다. 해서, 정정합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