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KO라는 게임이 작년 말 쯤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겟앰프드와 같은 컨셉이었지만 나름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식의 컨셉으로 해서 켄과 춘리를 계약했다는 걸로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별로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게시판 상태나 관련 뉴스가 잠잠한 걸로 봐서는 신통치 못한 분위기인듯 하다. 이번에 넥슨에서 새로 서비스하는 제 4구역이라는 게임도 겟앰프드나 퍼펙트KO 같은 집단 난투 스타일의 격투 게임이다.
제 4구역이 기존 게임들에 비해서 조금 신선한 부분이라면, 캐릭터를 골라서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각 캐릭터의 외모 말고는 특별히 차이가 없고 모두 같은 스탯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는 정도인 것 같다. 다만 타격 기술 위주냐 잡기 기술 위주냐 하는 것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정도라 플레이어들은 진정 실력 만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하는 것. 그래서 이건 강한 캐릭터가 뭐냐 어떤 기술이 좋으냐 하는 플레이어들 사이의 대화가 별로 일어날 여지가 없어서 어찌 보면 단점이 될지도 모른다.
게임의 진행은 별로 나쁘지 않다. 공격은 때리기과 잡기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요즘 대세인듯한 회피가 있다. 타격 회피야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지만 잡기 회피는 난이도가 살짝 있어서 쉽지 않아 이걸 잘 하는 플레이어라면 고수의 반열이 될듯한 느낌. 거기에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동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팀웍도 제법 필요하다.
전체적인 메뉴 구성은 깔끔하고 그래픽도 나름 괜찮다는 면에서 합격점. 다만 아이템을 구입하는 부분이나 스킬을 구입해야 된다는 부분에서 게임의 전체 설계가 역시나 프리스타일의 성공에 많은 벤치마크를 했던 것 같다. 캐릭터가 레벨이 오르면 새로운 기술을 구입해야 한다는 건 어떤 입장에서 보기에는 '돈이 되는 구성'일지도 모르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조금 강요 당하는 구성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노골적으로 '기술을 사라'고 게임 시스템이 강제하고 있다는 거다.
일반적인 국내의 MMORPG도 그렇지만 게임들이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는 건 좀 비겁하다. 새로운 아이템을 구입해야될 레벨이 되면 반드시 성능 좋은 개선된 새로운 아이템을 사야만 한다는 구성은 어찌 보면 플레이어들에게 업그레이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안사면 넌 바보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는 거다. 게다가 다른 외국의 게임들처럼 플레이어가 자기 취향에 따라서 아이템을 선택해서 공속이 빠르다던가 데미지가 좋다던가 모양이 멋지다던가 하는 걸 골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건 더더욱 비겁하다.
단 하나의 길로 플레이어를 몰아 넣어 버리고는 반드시 가야할 곳과 반드시 구비해할 것과 반드시 찍어야 하는 스탯으로 플레이어를 강요하면서 개발자들은 이게 '플레이어가 쉽고 간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하면서 선택을 즐기고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서 새로운 동기부여를 받는다는 건 외면해버린 거다.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와 다르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니라 현질을 해야되고 이게 마치 유일한 게임 개발사의 수익 구조라며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고.
솔직히 제 4구역의 자체 완성도가 꽤 나쁘지 않아서 게임도 할만하다. 그런데 이건 퍼펙트KO도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 분위기가 별로 신통치 않다는 걸 좀 되새겨 보자면, 이쪽 집단 격투 게임은 이제 단물이 빠져가는 분위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매니아들 이야기로는 버파나 텍켄이 그렇게 잘나간다고들 하지만 이제 예전처럼 격투 게임을 미친듯이 하는 사람들도 찾아보기 힘들고... 전체적인 격투 게임의 입지가 많이 약해졌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결국 게임은 꽤 그럴듯하게 나왔던 게임임에도 죽을 쑤고 있는 이유에는 근본적인 또 다른 문제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거다. 시장이 이제 한 물 갔다는 뜻인지도 모르고, 게임이 보기에는 그럴듯한데 해보니 외길 막장일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예전과 별반 다름 없는 수익 구조로 게임을 만들기는 했는데 게이머들은 이제 그런 구매 강요에 질리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개발자 뿐만이 아니라 개발을 기획한 기획자와 설계자(designer), 마케팅 담당자가 공동으로 아무 생각없이 내지른 결과인지도 모른다.
뭔가 좀 더 신선한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건가.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의 훌륭한 게임이 나오면 그 게임을 흉내내는 수많은 병신 같은 게임들이 등장하는 것은 원래 정설이라고 하더라도, WOW의 경우는 그 결과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생각이 되기도 하고 또 그게 그 만큼 WOW가 만든 업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무림에 난무하던 다양한 무공들을 하나로 통합한 지존 같은 느낌인 거다.
그 와중에 SP1은 WOW를 흉내내려고 온갖 술수를 부리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 같은 게임이다. WOW의 이모저모를 게임에 쑤셔 넣었지만 WOW가 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준이라, 그냥 껍데기는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속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할까. 퀘스트들은 플레이어의 동선이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아 보이고, 지역 별로 몹 레벨을 맞춰 모아놓은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퀘스트보다는 단순 사냥을 하기를 즐기게 될 뿐 아니라 기존의 Hack & Slash MMORPG에서 크게 벗어난 게 없는 게임플레이로 도대체 왜 WOW를 롤모델로 잡은 건지 모를 수준.
MMORPG의 역사에서 한국식으로 분류하는, MUD에서 MUG를 거쳐 리니지로 넘어오는 H&S MMORPG들은 애초에 레벨이라는 게 숫자 말고의 의미가 없었지만 북미식으로 분류하는 MUD에서 EQ를 거쳐서 DAOC의 계통으로 넘어오는 게임들에서는 레벨이란 중요한 밸런싱 테크닉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한국식 MMORPG들이 WOW가 등장하면서 많이 헷갈려하는 부분들이 발생하는데, WOW가 가진 요소들을 뜻도 모르고 가져다가 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SP1도 그렇게 요소들을 혼동하고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퀘스트와 월드 디자인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WOW에 비해서 SP1은 전혀 거기에 대해서 고민이 없었고, WOW식의 '퀘스트 받으러 돌아다니기'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전화 부스를 만들어서 퀘스트들을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나마 전화번호를 외워서 쓰지 않게 해준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전화 부스는 엉망인 물건이다. 퀘스트는 초반에 하나하나 동영상을 붙여 쓰다가 동영상 만드는게 힘들어서인지 중간에 없어져버리고, 대사는 캐릭터와 싱크도 맞지 않고 연출도 엉망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몬스터에 몰매 맞고 죽는 일도 비일비재. 퀘스트의 난이도도 들쑥날쑥이라 같이 플레이할 사람을 찾기도, 같이 하기도 참 애매하다.
그래, 어쩌면 내가 WOW를 보고 나서 모든 MMORPG들을 재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요소는 WOW에 비해서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포스트 한국식 MMORPG라고 스스로를 광고하는 게임에 WOW를 기준으로 재단하는 건 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WOW를 해 본 다른 플레이어라면 안그럴까? WOW 같은 게임이 있는데도 SP1 같은 게임들을 여전히 만드는게 '아직 WOW를 안해본 사람들'을 타겟팅하고 있는 거라면 이건 무슨 병신 같은 전략인건가. "저희 게임은 WOW를 안해보신 게이머만 모십니다"라고 광고하지 왜?
최근의 넥슨 퍼블리시 담당자가 누군지 정말 삽질이 끝이 없다. 뭐 위에서 사장들끼리 쿵짝해버리고 '야 이거 퍼블리싱 하기로 결정났다 진행해라' 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조만간 새로 공개된다는 이종 격투기 어쩌구 제4구역마저 관광태우지 말아주시기를.
그런데 SP1 따위에 포스트 한국형 MMORPG 자리를 내어주면 한국 MMORPG의 미래는 참으로 어두운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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