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개발하던 중 개발팀 안에서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걸 명확하게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기획팀원도, 그래픽팀도, 프로그램팀도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걸 뻔히 알고 있음에도 책임자의 고집이나 관리자들 사이의 정치적인 알력, 개발자 개개인들의 밥줄 같은 것들이 엮여서 누구 하나 자신 있게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술자리에서 한탄이나 하게 되는 프로젝트.
허스키 익스프레스는 이런 프로젝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디자인의 어느 한 곳에서도 조화롭다거나 튜닝이 완벽하다거나 기발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구석이 없이 플레이하는 내내 '이런 게임을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만든걸까'라는 궁금증만 쏟아내게 하는 게임이다.
기본적으로 허스키는 마비노기에서 얻은 노하우들을 활용해서 만든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개발 책임자가 마비노기팀 출신이거나 혹은 그 쪽의 누군가가 강한 입김을 가지고 있던 어쨌든 마비노기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다는걸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는데, 문제는 마비노기의 그 '노하우'라는 것들이 갈수록 버려야 하는 게임 디자인상의 잘못된 관행 부분이라는 것이 큰 문제다.
첫째로,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을 계속 단절하는 조닝(zonning)을 들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A 마을에서 B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 1) B 마을 존을 출발, 2) B 마을 앞마당, 3) B-A 마을 구간, 4) A 마을 앞마당, 5) A 마을이라는 네 번의 전환점을 경험한다. 각각 짧게는 1초 가량, 길게는 2~3초 가량 되는 별 것 아닌 로딩이지만, 플레이어는 매 구간마다 경험의 단절이 생긴다.
초창기 온라인 게임에서 각 지역을 존으로 나누었던 것은 MMORPG가 MUD를 기반으로 해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기술적인 문제였다고 말하기에는 1996년 울티마 온라인은 필드에서 이미 심리스(seemless)를 구현했던걸 생각하면 변명이고, 기획과 기술 구현 안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지 않고 기획이 설계를 고수했기 때문에 조닝이라는게 계속됐다고 보면 된다.
마비노기는 이런 면에서, 기술적으로 당대 가능한 것들이었음에도 조닝과 채널링(channeling)을 고집했던건 이런 배경이 컸다고 본다. 충분한 동접을 감당할 수 없는 월드 디자인과 서버 설계로 인해 조닝과 채널링을 쓸 수 밖에 없던 거다.
그런데 허스키는 이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스레' 사용하고 있다는데서 문제가 된다. 애초에 조닝이라는 요소가 마치 '데브캣 게임의 개성'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연스레 마을에 들어가며 화면 전환을 하고 당연스레 구간들을 존으로 나눠 놓았다.
게임 설계나 구현에서만 이런 문제가 있는게 아니다. 둘째로 허스키의 게임 플레이에는 방향성이 없다. 적당한 레벨링 요소와 적당한 노가다(grind) 요소가 깔려있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자신의 개를 몰입해서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역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개와 썰매를 개조해서 레이싱에 몰입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게임을 시작하고 30분 동안 플레이어를 휘어잡는 그 어떤 요소도 없다. 약간의 배경 설명과 튜토리얼격인 퀘스트를 따라가다보면 '세계관도 익히고 게임도 익히고 하겠지'라는 어설픈 추측과 두리뭉실한 설계. 플레이어는 퀘스트 수행에서 이것들을 '자연스레' 배우는 것도 아니고 '보상으로 책을 받아서 읽으며' 배우게 된다.
개는 그냥 다니다 보면 경험을 쌓고 성장한다. 이걸 트윅(tweak)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개 성장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도 없이 그냥 개의 출생에 따라 모든게 결정된다. 애초에 개 키우기 게임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개 뽑기 게임이라면 몰라도.
마을간 무역은 무역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무역 요소를 사용하는 4X 게임이나 대항해시대 같은 무역 게임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거리에 비례해 이익이 증가한다'와 '마을마다 구매/판매 가격이 다르다'는 것인데, 이 두가지 중 어느 것도 허스키에는 없다. 평균 10~15% 정도의 수익률로 모든 마을은 평준화 되어 있다. 물건을 제대로 한 탕 집어다 팔아서 떼이익을 남기거나 하는 건 허스키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그저 왕복 노가다로, 판돈과 적재량으로만 하는건 무역이 아니다.
레이싱을 위한 요소도 거의 없다. 레이싱에 판돈이 걸려서 레이싱으로만 먹고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썰매를 개조해서 일반 무역쟁이들보다 두 배쯤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 두 마리가 끌던 세 마리가 끌던 다섯 마리가 끌던 그 속도는 거기서 거기.
허스키의 재앙은 아마도 불필요한 고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리드 디자이너(혹은 디렉터)가 콘솔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나 MMORPG 플레이 경험이 거의 없이 그저 '이렇게 만들면 재밌겠지'라는 환상으로 컨셉을 잡고 실무 디자이너들에게 '이렇게 만들어라'로 하달하는 방식이었을게다. 허스키가 개개인들의 창의적인 설계 집합으로 이렇게 나왔다면 그건 더 비극일테니 아니기를 바란다.
이 재앙 덩어리는 샌드박스에 대한 환상 같은 게임 디자이너들의 고질병에 합병증으로 발병한 암과 같다. 불필요한 고집, 리뷰 없는 설계, 고민도 경험도 없는 상상 속의 설계. 잘 만든 요소들이 없지 않지만, 그건 똥에 박힌 진주일 뿐.
마비노기의 스핀오프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하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마비노기 하던 애들이라고 이 게임을 할까? 그걸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