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가 최근 디아블로3를 공개했다.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 디아블로3는 디아블로2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모양. 3D에 어울리는 약간의 물리 효과 - 시체가 튕겨나가거나 다리, 벽 따위가 무너지는 - 가 있긴 하지만 이건 그냥 양념일 뿐, 기본적인 게임 내용에서는 달라진게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디아블로는 무작정 썰자(Hack & Slash) 게임의 완성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를 기본형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컨텐츠들을 넣으려고 시도했던 디아블로 출신 개발자들의 게임들, 이를테면 어둠의 왕좌(Throne of Darkness)라던가 헬게이트(Hellgate: London) 같은 게임들은 실패할 수 밖에 없던 거다. 완성된, 안정되어 있는 게임 요소에 새로운 걸 첨가하고 변형해봐야 그 균형이 깨질 뿐이지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이걸 알고 있는 거다. 그래서 게임을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두고 약간의 양념을 좀 더 쳤을 뿐, 게임을 진보시키겠다고 결심하거나 개선하겠다고 결심하는 따위의 삽질은 않는 거다.
그러면, 어떤 디자인이 어디에서 완성되는 것이고 어디까지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하는 걸까. 이건 경험 뿐이다. 많은 게임을 플레이하고 많은 개발 경험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해보는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을 검토하면서 어떤 요인이 긍정적인 요소인지 어떤 요소가 부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는 수 밖에 없다.
최근 한국의 많은 대작들이 왜 줄줄이 개 같이 나오는가. 저 경험들을 무시하고 그저 개발 책임자가 자기 뇌내 망상을 독창성(originality)이라고 맹신하고 '내 말대로만 만들면 성공한다'고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생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흥분하면서 '우리는 잘 만들고 있다'고 망상에 중독되기 때문이다. 개발 도중에 나오는 '뭔가 이상하다'는 경고 신호를 '너 따위가 뭘 알아'라는 거만한 제스처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스타크래프트 고스트와 같이 '뭔가 이상하다'는 신호에 가차없이 몇 번의 경고 후에 프로젝트를 뽀개기도 했고, 스타크래프트의 개발 기록처럼 주변 경쟁작들의 트렌드와 자기 반성을 꾸준히 하기도 한다. 그래서 블리자드는 언제나 불패전의 용사로 시장에 살아남는다.
우리가 블리자드에게 배워서 행해야하는 것은, 빌 로퍼 같은 인물이 디아블로2와 스타크래프트의 신화를 만들었다는 뻘소리들을 믿고 스타 마케팅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 집단의 지성인 거다. 한두 인물에게 전권을 주고 개발하는 프로젝트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개발팀 안에서 나는 위험 신호를 개발자들끼리의 술자리가 아니라 회의실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듣고 모두가 토론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거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