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슬리(Huxley)
리뷰 2008/06/28 09:40몇 년 전부터, 웹젠이 SUN을 말아먹은 이후로, 차기작들 중 기대를 모았던 게임으로는 유일하게 헉슬리만 살아남았다. E3와 각종 게임쇼, 컨퍼런스에서 데모를 찔끔찔끔 보여주며 MMOFPS라고 강조하던 이 게임은 대표적인 아웃도어 MMOFPS이던 플래닛사이드(Planetside)에 견주어지면서 FPS팬들에게 '와 한국에서도 드디어 1000vs1000 쯤 되는 전투가 가능한 FPS가 나오는구나'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언리얼 엔진의 특성상 아웃도어 표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과 1000vs1000을 처리할 능력이 안된다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100vs100도 '지금은 안되고 나중에 지원하겠다'는 수표로 때운 버전이 어제(27일) 일반에 공개됐다.
그래서 헉슬리의 대표적인 특징은 FPS이면서 MMO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게 자세히 보면 좀 오묘하게도 얼마 전 영국을 개박살낸 배경으로 나왔던 FPSRPG 헬게이트(Hellgate: London)와 오버랩된다는 거다. 헬게이트가 FPS와 RPG를 엮어서 욕먹던 가장 결정적인 부분 중 하나는 총을 쏘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헉슬리는 그나마 낫지만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 첫번째 문제.
둘째로는 FPS를 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들은 인던을 돌면서 '싱글 플레이'로 퀘스트를 깨거나 렙업 노가다를 해야한다는 것인데, 이 자체로 MMO가 가지는 장점을 스스로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퀘스트를 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한다고 해도 끽해봐야 몇 명의 '파티'이고 이는 MMO의 특징적인 '지나가는 플레이어 A B C'가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를 가진다. WOW 같은 MMORPG들이 인던을 활용한다고 하지만 주 활동 공간 - 게임 플레이가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 - 에서 부속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던데 반해서 헉슬리나 헬게이트, 코난(Age of Conan) 같은 게임들이 착각하고 만든 공간은 주 활동 공간이 인던이라는 것이다. (헉슬리는 심지어 마을에서 3인칭으로 바뀐다.)
MMORPG에서 플레이어가 MMORPG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 가장 결정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PVP가 있는 경우) 지나가는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상황이거나 (PVP가 없다면) 옆에 지나가는 플레이어가 삽질을 하는 걸 볼 때이다. 잘하는 플레이어라면 경쟁심을 느끼게 되고 못하는 플레이어라면 우월감을 느끼게 되는 이 순간이, 헉슬리에는 없다.
게다가 FPS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RPG식 레벨과 아이템 강화 따위의 컨텐츠를 엮어 넣음으로써 플레이어의 손기술로만 경쟁하던 기존의 FPS의 틀을 완전히 깨고 있다는 것. 즉 다시 말하면, 저레벨의 숙련된 FPS 플레이어가 고레벨의 고급 장비와 극도로 강화된 방어구를 착용한 플레이어를 때려잡기가 벽 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소리다. 소위 무기빨이라는 게 '나도 무기만 질러서 바꾸면 잡을 수 있다'는 기존 형식에서 '레벨에 밀렸다'는 느낌으로 변형되었다.
그렇다고 헉슬리가 FPS 고유의 맛을 충분히 내고 있는가 하면 또 아니라는 것. 그나마 FPS 매니아들이 만족할만한 컨텐츠로 가상 전투를 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국내에 익숙치 않은 - 사실상 게임 시장에서 잊혀진 퀘이크(Quake)와 언리얼토너먼트(Unreal Tournament)식의 - 하이퍼 FPS 스타일이라는 것도 문제가 된다.
종합해서 보면 헉슬리는 FPS 게이머 풀(pool) 안에서 하이퍼 FPS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일단 걸러내고 거기에 RPG 식의 레벨업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또 걸러내서 남은 플레이어들을 타겟팅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또 반대 방향에서 RPG 게이머 중에 FPS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걸러내고 하이퍼 FPS에 적응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을 걸러낸 나머지 플레이어를 타겟팅하고 있는 거다. 말하자면 웹젠이 사활을 걸고 대박을 기대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대대적인 오픈에 비해 PC방에서 헉슬리를 찾는 플레이어는 거의 없고, 하는 플레이어들을 찾기는 더 힘들며, 심지어는 PC방 점주들도 헉슬리가 뭔지 모르는 수준이다.
추측해보자면, 강기종 PD는 MMORPG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이건 결코 FPS를 만들려고 만든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FPS에 정말 관심이 있는 개발자였다면 아마도 진짜 MMOFPS, 플래닛사이드를 보고 뭔가 감명을 받았을 것이고 3D 엔진을 (인도어에 특화된) 언리얼 엔진을 쓰지는 않았을 거다. 아니 플래닛사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짜 FPS를 만들려고 했을 거다. 하지만 강 PD는 헬게이트 식의 1인칭으로 진행하는 RPG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고, 아니면 적어도 국내의 MMORPG 시장을 보면서 뭔가 차별화된 MMORPG를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헬게이트를 보면서 '우리 게임이 저것 보다는 낫게 만들면 잘 되겠지' 하면서. 혹여 이것도 아니라면 그는 (일반적인 병신 개발자들이 하는 것처럼) 회사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회사 돈으로 모험을 해서 자기 캐리어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게임이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병신 같은 컨텐츠는 그렇다고 쳐도 인터페이스와 유저 편의를 무시한 각종 컨피그 옵션 셋팅들 - 심지어는 키 셋팅을 바꿀 때 중복되는 키를 체크하지도 않아서 플레이어가 일일이 중복되는 키를 찾아서 제거해줘야 한다 - ,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강조하고 자랑하던 탈것들(vehicles, 비행체나 차량들)의 움직임도 다른 컨텐츠들 못지 않게 엉망인 걸 보면, 애초에 헉슬리 팀에서는 플래닛사이드나 언리얼의 탈것들을 벤치마크할 생각도 없던 거다.
헉슬리의 미래는 그래서 굉장히 불투명하다. 더불어 웹젠의 미래는 더더욱. 헉슬리의 미래를 점치자면 아마도 헬게이트의 미래를 살짝 엿보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헬게이트가 어떻게 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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