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OC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던가 아나키 온라인(Anarchy Online)이라는 MMORPG가 있었다. SF라고 하기에도 좀 거시기하고 하여간 우주를 배경으로 총질하는 게임이었는데 나름 꽤 매니아 층을 형성해서 한참 서비스된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하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코난의 시대는 아나키 온라인을 만들었던 펀컴(Funcom)에서 만든 코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환타지 MMORPG이고, 최소한 두 번째 MMORPG라는 점에서 전보다 많은 노하우가 있을 테니 뭔가 기대해볼만 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들이었다.

코난의 시대(Age of Conan, 이하 코난)는 대략 로마와 게르만, 이집티안을 모델로 만든 종족들과 로마 시대의 의복, 장구들을 컨셉으로 하고 있어서 독특하다. 게다가 성인용 하드코어 컨셉에 충실하게 일반적인 환타지 MMORPG들에 비해 의상이나 장비들의 노출이 심하고, 출혈, 고어 연출 등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다. 섹슈얼한 이미지던 하드코어한 이미지던 어느 쪽이던. 이건 여성 플레이어들의 경우에도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걸로 보면, 확실히 국내의 여성 플레이어들과는 취향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북미 매니아들만의 취향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전투의 부분에서 상대편의 방어 상태(방향)가 표시되고 그 방향을 피해서 공격하는 쪽이 좀 더 높은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실시간적인 액션 전투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코난의 장점은 여기까지.

솔직히 우리는 지난 게임 개발의 역사에서 학습 곡선이라는 걸 배운바 있다. 그 욕 먹는 라프 코스터도 재미 이론에서 게임 플레이어의 학습에 대해서 주구장창 책 한 권 내내 이야기 하고 있고, WOW라는 학습 곡선에 대한 완벽한 교본까지 나와 있는 상태에서, 코난은 학습 곡선이 뭔지는 관심 없고 그저 모든 걸 내러티브로 해결하려고 했다. 내러티브... 다 좋다지만 코난의 내러티브가 그렇게 훌륭하다고 볼만한 것도 아니라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게임이 되어버린 상황.

초보 플레이어들이 게임 도입부에 강제되는 싱글 플레이를 간신히 통과하고 나면 어디에 가서 뭘 해야하는지 알기도 쉽지 않고, 퀘스트는 Funcom이 어드벤처를 만들어와서인지 단방향적인 데다가, 나름 강조한 에픽 퀘스트를 빼면 그저 다른 게임들과 별로 차이 없는 흥신소 심부름 퀘스트라 이게 과연 장점이라고 내세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게임에서 학습 곡선에 개념이 없다는 건 간단한 결과를 낳는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진행에서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새로운 기술의 용도를 찾는데 오래 걸리며, 게임의 룰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MMORPG에 신규 진입하는 유저들이 쉽게 이탈하게 되거나 다른 MMORPG에 적응한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서로 다른 룰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게임의 수명은 짧아지고 쉽게 떨어져 나가게 되는 원인이 된다.

게임 플레이의 부분에서 보면, 던전앤드래곤 온라인(Dungeons & Dragons Online, 이하 DDO)가 실패했던 여러 이유 중에 치명적인 것으로 나는 클래스는 있으되 협동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꼽는다. (전반적인 부분에서 코난은 DDO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던전 안에서 도적의 함정 탐지가 필요하지 않았고, 전사의 몸빵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적절한 힐빨을 유지해줄 수 있는 힐러와 앞 뒤 없이 달려들어 몹들을 잽싸게 썰어낼 수 있는 뎀딜 클래스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파티를 만들고서도 협동하기보다는 그냥 '몰려다니기' 같은 초보적인 형태로만 플레이 하게 됐다. 이미 EQ나 WOW 같은 협동 게임을 해본 플레이어들이 DDO 같은 게임을 하면서 '이게 뭥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니까.

코난의 시대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클래스는 크게 4개의 구분 전사, 힐러, 로그, 마법사로 구분되어 있지만 이 클래스가 협동을 하도록 유도되어 있지도 않고, DDO와 마찬가지로 액션 전투를 하도록 되어 있어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맺고 돌아다니는 일이 드물게 됐다. 말하자면 이건 게임 시스템 자체가 협동 플레이에 대해서 고려하고 있지 않았거나 다른 시도를 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어쩌랴, 협동 플레이는 이미 검증된 무결한 시스템이라 이단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어쩌면 이건 플레이어에게 파티플레이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나름 인정받을 수 있기도 하겠지만, MMORPG의 핵심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고 협동은 플레이어들의 게임내 몰입을 강고하게 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이런 요소가 없다는 것이 코난에 큰 단점으로 작용하게 되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코난에 대한 결론은 간단하다. DDO가 그랬듯, 떠난 회원들을 붙잡기 위해 그렇게 발악을 하며 메일을 쏴대고 이벤트를 해도 썰렁한 서버를 다시 채울 수는 없던 것처럼, 코난도 수 개월 이내에 썰렁한 서버를 보며 서버 통합을 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코난이라는 게임을 잊게 될 것이다. 일부 매니아 플레이어들은 그래도 코난이 재밌다고 징징대며 게시판에 광고를 하러 다닐 것이며, 떠난 사람들은 아마 WOW로 돌아가 지겹다며 인던을 돌면서 다음 발매될 새로운 MMORPG를 기대하게 되리라. 마치 자연계에서 선택받지 못한 유전자가 사멸하듯, 또 하나의 교훈을 남기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