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하나의 훌륭한 게임이 나오면 그 게임을 흉내내는 수많은 병신 같은 게임들이 등장하는 것은 원래 정설이라고 하더라도, WOW의 경우는 그 결과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생각이 되기도 하고 또 그게 그 만큼 WOW가 만든 업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무림에 난무하던 다양한 무공들을 하나로 통합한 지존 같은 느낌인 거다.
그 와중에 SP1은 WOW를 흉내내려고 온갖 술수를 부리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 같은 게임이다. WOW의 이모저모를 게임에 쑤셔 넣었지만 WOW가 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준이라, 그냥 껍데기는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속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할까. 퀘스트들은 플레이어의 동선이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아 보이고, 지역 별로 몹 레벨을 맞춰 모아놓은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퀘스트보다는 단순 사냥을 하기를 즐기게 될 뿐 아니라 기존의 Hack & Slash MMORPG에서 크게 벗어난 게 없는 게임플레이로 도대체 왜 WOW를 롤모델로 잡은 건지 모를 수준.
MMORPG의 역사에서 한국식으로 분류하는, MUD에서 MUG를 거쳐 리니지로 넘어오는 H&S MMORPG들은 애초에 레벨이라는 게 숫자 말고의 의미가 없었지만 북미식으로 분류하는 MUD에서 EQ를 거쳐서 DAOC의 계통으로 넘어오는 게임들에서는 레벨이란 중요한 밸런싱 테크닉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한국식 MMORPG들이 WOW가 등장하면서 많이 헷갈려하는 부분들이 발생하는데, WOW가 가진 요소들을 뜻도 모르고 가져다가 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SP1도 그렇게 요소들을 혼동하고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퀘스트와 월드 디자인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WOW에 비해서 SP1은 전혀 거기에 대해서 고민이 없었고, WOW식의 '퀘스트 받으러 돌아다니기'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전화 부스를 만들어서 퀘스트들을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나마 전화번호를 외워서 쓰지 않게 해준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전화 부스는 엉망인 물건이다. 퀘스트는 초반에 하나하나 동영상을 붙여 쓰다가 동영상 만드는게 힘들어서인지 중간에 없어져버리고, 대사는 캐릭터와 싱크도 맞지 않고 연출도 엉망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몬스터에 몰매 맞고 죽는 일도 비일비재. 퀘스트의 난이도도 들쑥날쑥이라 같이 플레이할 사람을 찾기도, 같이 하기도 참 애매하다.
그래, 어쩌면 내가 WOW를 보고 나서 모든 MMORPG들을 재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요소는 WOW에 비해서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포스트 한국식 MMORPG라고 스스로를 광고하는 게임에 WOW를 기준으로 재단하는 건 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WOW를 해 본 다른 플레이어라면 안그럴까? WOW 같은 게임이 있는데도 SP1 같은 게임들을 여전히 만드는게 '아직 WOW를 안해본 사람들'을 타겟팅하고 있는 거라면 이건 무슨 병신 같은 전략인건가. "저희 게임은 WOW를 안해보신 게이머만 모십니다"라고 광고하지 왜?
최근의 넥슨 퍼블리시 담당자가 누군지 정말 삽질이 끝이 없다. 뭐 위에서 사장들끼리 쿵짝해버리고 '야 이거 퍼블리싱 하기로 결정났다 진행해라' 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조만간 새로 공개된다는 이종 격투기 어쩌구 제4구역마저 관광태우지 말아주시기를.
그런데 SP1 따위에 포스트 한국형 MMORPG 자리를 내어주면 한국 MMORPG의 미래는 참으로 어두운 거 아닌가?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