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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festo Games

2008/02/13 07:01

할 게임도 별로 없고 해서 요즘 아바를 계속 달리고 있는데, 아바를 하다 보면 항상 짜증나는게 한쪽 팀으로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몰려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하사관 - 위관의 계급 표시 바탕색이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확 달라져서 한 눈에 딱 위압감이 생긴다고 해야할까.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팀에 위관급 플레이어가 한 명이라도 들어오면 우루루 그 쪽 팀으로 몰려가는 일이 생긴다. 반대쪽 팀에 상사라도 좀 있다면 낫겠지만... 상사들도 이미 위관급 플레이어 밑으로 줄줄이 붙어버리니까, 답이 없다. 이른바 줄서기.

MMORPG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계급이라는 것이 어느 게임이나 위로 갈수록 레벨(계급)을 올리기 어렵게 되어 있다. 뭐 어렵다고 하지만 RPG처럼 쎈 몹을 잡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그저 시간만 주구장창 보내면서 게임수를 쌓으면 그게 죄 경험치로 누적되어서 계급이 올라가는 시스템인데. 문제는 하사1에서 2로 올라가는 걸 100%로 놓고 보자면, 하사4에서 5는 약 500%쯤 되는가 보다. (정확한 수치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걸린 시간으로 보건대.)

이렇다보니 플레이어가 하사인 것과 중사인 것, 상사인 것의 경험 차이가 수십 배는 되고 그 이상 될수도 있다. 결국 소위라도 하나 있다고 하면 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그래프를 다 딛고 올라선 말하자면 역전의 근성가이라는 소리. 별로 많지도 않은 맵을 반복해서 돌려가며 플레이하니 적어도 한 맵을 기백 판은 플레이했을 터. 덕분에 어느 자리에서 쏘면 상대가 보지 못하는지, 수류탄을 어느 위치에서 어느 각도로 던지면 어디에 떨어지는지 말하자면 공식 같은 것을 줄줄이 꿰고 있다는 소리다. 당연히 이 공식을 모르는 중사, 하사 플레이어들은 그저 깨갱하고 밟히는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뭐 위관급 플레이어들도 용가리 통뼈는 아니라서 뒤에서 쏘는 총이나 정면 힘싸움 같은 거에서 쉽게 죽기도 하지만.)

그런데 이 계급 시스템이라는 것이 옛날 카운터스트라이크 시절에는 없던 것이었다. 상대 플레이어 실력이라는 걸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었고, 간혹 유명한 플레이어가 있다고 해도 자리를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양 팀 공평하게 한 명 씩 들어가는 시스템이라 - A 1명 B 0명이면 A에는 참가가 불가능하다 - 한 쪽으로 줄을 서고 싶어도 상대 편에 누가 들어가주기를 기다려서 게임에 참가해야하는 아주 '불편한' 방식이었으니까. 그래서 유명한 플레이어가 있건 말건 그냥 제가 원래 좋아하던 취향의 팀(테러리스트나 테러진압팀)을 골라서 들어가는게 일반적이었다. 결국 줄서기는 쉽지 않았다는 소리. 게다가 이렇게 줄서기를 한다는 것도 같은 서버를 주구장창 찾아갈 때의 이야기이고, 서버 리스트에서 특별한 선호 서버가 없이 아무 서버나 빈 자리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의 경우는 대부분 랜덤으로 참가해서 애초에 누가 누군지도 모르니 그냥 대충 할 수 밖에 없었다. 요는 이 계급 줄서기 문제가 한국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바를 하다 보니 아바 이야기만 꺼내서 하게 되는데, 특별히 아바를 까는 건 아니다. 이 문제는 스페셜포스나 서든어택, 아바 뿐만 아니라 계급이 있는 대전 게임이라면 어디에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심지어는 퍼펙트KO라는 격투 액션 게임도 같다. 상대 계급을 주욱 보고 고레벨이 있으면 그 쪽에 빌붙거나 아니면 게임 참가를 안하고 나가버리는 현상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아바에서도 이 줄서기 문제를 심각하게 느꼈는지 언젠가 '자동 팀 균형 채널'이라는 걸 만들었다. 줄서기에 피해를 보는 양민들이 이 채널에 가서 플레이를 하도록 하고, 이 채널에서는 무조건 자동 팀 균형이 적용되도록 한 것이었다. 그런데 플레이어들은 아무도 저 채널로 가서 플레이를 안했고 결국 이 채널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 줄서기의 수혜자가 '고의는 아닐지라도'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회 비용이라고 하면 되겠는데, 줄선 방에는 안들어가면 피해를 보지 않고, 우연히 들어간 방에서 줄선 팀에 끼어 들어갔다면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 결국 플레이어들은 이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줄서기를 용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있으면 바보들이 있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 마치 '형제들의 부대(Band of Brothers)'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어디에 떨어지던 간에 전쟁터에서 믿을 놈은 자기하고 옆의 놈 뿐"인 거다. 그래서 그들은 "옆이 소블이면 자리를 옮겨서 하일리거나 윈터스 같은 딴 장교한테 붙을꺼"라고 말하니까. 특히 FPS 게임에서 정면에서 마주치는 것보다 좋은 자리를 선점한 쪽이 유리한 거고, 경험 부족한 동료가 미친듯이 혼자 돌격하다 죽어서 7:8로 숫자가 하나 씩 줄어들어 내가 혼자 남아 남은 적들을 상대해야 되는 일이 생기는 건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 주: BOB에서 소블이라는 사람은 바보같은 중대장이고 하일리거와 윈터스는 개념 중대장이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적당한 당근. RPG와 같은 '레벨'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면 자기 레벨에 맞는 몹을 때려잡아야 정상적인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도 함께 가져왔어야 했다. 즉, 양 팀의 계급을 적절한 수치로 환산해서 이 수치의 차이에 따라서 양 팀이 획득하는 경험치가 달라야 한다. 위관들이 줄줄이 있는 팀이 하사관들이 줄줄이 있는 팀과 상대한다면 평소보다 훨씬 적은 경험치를 얻도록 말이다. 플레이어들은 자동 팀 균형 따위를 켜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들이 좀 더 많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서 팀을 스스로 조정할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위관이 된 플레이어는 하사관들이 얻어야 하는 경험치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가 필요하고 결국 더 빠른 진급을 위해서는 더 강한 적을 때려 잡는 수 밖에 없는 거다. 줄서기? 분명히 없어진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