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온라인의 논쟁터에서, 게임 관련 사이트들을 다니다가 보면 반드시 일어나는 몇 가지 논쟁이 있다. 하나는 아무 죄의식 없이 불법 복제를 하는 쪽과 정품 사용을 조금이라도 하자는 쪽과의 충돌이고, 또 하나는 게임의 요소들 - 특히 온라인 게임의 부분유료화된 아이템 가격 - 을 놓고 싸다 비싸다 하는 논쟁이다.

전자의 경우는 조선 반도 남쪽에 과하게 만연해 있는 상황이라, 어느 게임 사이트에서건 발생하는 논쟁인데, 사이트의 성격에 따라서 90:10, 10:90 정도의 압도적인 주장들에 다른 쪽이 관광당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45:55 와 같은 팽팽한 논박 - 이라기 보다는 개싸움 - 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게임 개발자 지망생들이 자주 몰리는 곳, 예를 들어 레임프루프나 TIG 같은 곳들은 불법 복제에 대한 글, 즉 "우왕ㅋ 오늘 콜오브듀티4 다운받았어요"라거나 "다운 받았는데 실행이 안돼요"라거나 "이거 어디서 받나요"와 같은 글이 올라오면 개발자 옹호론자(이하 '옹호론자'라고 하자)들의 우뢰와 같은 폭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불법 복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는 금지하(는 것처럼 공시하)고 있는 닌텐도스토리나 플레이와레즈 같은 사이트들에서는 처음 조용히 관망세가 유지되다가 이후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 올라오게 마련이다. 이런 곳에서 "불법 복제 하지 말고 사서 하세요"와 같은 댓글이 올라오면 소위 '논란성 게시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고 댓글이 삭제되거나 잠시 후 (글을 쓴 사람이 봤을 즈음) 글이 삭제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또 마찬가지로, 어떤 불특정의 온라인 게임 공식 사이트의 유저 게시판에서 "아이템 가격이 너무 비싸요"라거나 "이게 도대체 X원 값어치를 한다고 보는 거냐"라는 식의 항의성? 성토성? 게시물이 올라오게 되면 옹호론자측은 "개발자도 먹고 살아야지요"라거나 "님이 만들어 보세요"라는 식의 댓글이 올라오게 된다.  대체로 이런 게시판은 일반 플레이어들이 오는 곳은 아니고 해당 게임의 매니아이거나 잠시 조사차 놀러온 업계인, 혹은 해당 게임의 매니아이면서 게임 개발자 지망생과 같은 소위 '하드코어 게이머'라고 부를만한 사람들만 오는 곳이라, 논란은 팽팽하게 진행된다.

그런데 나는 얼마 동안의 관찰 결과, 게이머들은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게임개발사를 과도하게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즉, 개발자가 아니라 개발사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것을 개발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거다.

불법복제의 문제를 보자.

일단 불법 복제는 게임 개발자의 개발 의욕을 저하시킨다...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 불법복제가 게임 개발자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확률은 매우 낮다. 불법복제를 하던 하지 않던 게임 개발자의 입장이라면 그들은 모두 해당 게임의 '플레이어(혹은 잠재적 플레이어)'이다.

사실 불법복제는 개발자의 사기 문제나 월급을 받는다 못받는다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사가 개발 결과의 보상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옳다. 게임 개발자와 개발사는 동일한 것이 아닌, 별개의 조직이다. 개발사가 망해도 개발자는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IT 업계에서 평생직장이 사라진 결과이기도 하고, 게임 개발의 원천기술?은 기업이 가지는게 아니라 개발자 자신이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불법 복제를 옹호한다는 말이 아니다. 불법 복제는 도덕성의 문제이다. 지나는 길에 과수원이 있고 탐스러운 과실이 열려있는데 담장도 없고 '서리하지 마시오'라는 팻말도 없다고 과실을 마음대로 따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남의 것을 훔치면 안된다는 교육을 어릴적부터 꽤 투철하게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불법 복제는 누군가(기업)가 힘들여(돈들여) 만든 제품을 훔치는 행위라는 인식이 부족한 게 근본적인 원인이다. (물론 이에 대한 적발이 쉽지 않은 것도 한 몫 한다만.)

아이템 가격의 문제를 보자.

부분유료화된 온라인 게임에서, 개발자는 아이템을 만들고 아이템의 가격을 설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템의 구매가 개발자의 구좌에 돈을 넣어주는 행위는 일단 아니고, 개발사의 구좌로 들어가는 것을 재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기업이 배부르게 번 돈이 개발자의 구좌로 나눠서 들어간다는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다. 개발자는 항상 정해진 '월 급여'를 받을 뿐이다.

소위 우리가 인센티브라고 부르는, 성과급은 실제로 개발자에게 충분히 지급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아니 존 카멕의 경우는 있는 것 같다. 음, 일단 한국에는 없다. 백억 매출이 나온 게임이 성과급으로 개발자들에게 분배하는 몫은 대략 10% 이하. 십억 원이라는 거금을 개발자들이 나눠갖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백억 매출이 나오게 만든 공로자들은 단지 개발자뿐이 아니다. 이 게임 개발의 촐괄 책임자와 그 휘하 개발자들은 전체 공로자들 - 마케팅, 프로모션, 서버 관리자, 운영팀 - 들과 함께 성과급을 분배한다. 어떤 온라인 게임이 대박이 났다면 그에 대한 조사 - 왜 이 게임이 대박났는가 - 가 나름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분배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개발팀만 독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면 다른 공로자들은 뭔가?

그래서 불행하게도, 이렇게 지급되는 성과급은 대충 {(개인 공헌도/전체 공헌도)} 로 계산하므로 실제 개발자들이 받는 성과급은 대략 X천만 원 수준이다. 백억 매출의 게임이 말이다. (이걸로 인생 펴기는 매우 힘들다. 즉 게임 잘 만들어서 부자 된다는 건 다 뻘소리라는 뜻.)

그렇다면, 우리가 "개발자도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을 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개발자들이 만족감을 느끼는가? 별로 그렇지 않다. 음, 그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만 그렇다. 개발자들은 그저 월급쟁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기업의 성장이 개인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듯 여기저기에서 말하지만, 기업은 언제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개발자들을 제거할 수 있다. 경영상의 문제(합병 같은 경우)나, 재정적인 문제(투자를 받지 못한 경우)가 발생하면 기업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고 결과가 '감원'으로 나온다면 과감히 개발팀을 해체(왕창 짤린다)하거나 개발자를 쳐낸다(좀 짤린다).

기업은 생명체이지만, 기업이 인간은 아니다. 특히 주식회사는 인간들의 머리가 모인 가상의 생명체이지만, 이 놈은 자비란 것이 없다. 자비는 인간이 가지고 있을 뿐, 기업은 아니다.

짤린 개발자들은 "ㅅㅂ 뭐 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잠깐 하고는 새로운 회사로 옮겨간다. 다시 월급을 받으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판단의 최우선은 금전적 가치이고, 이것은 인간의 능력과 비전을 계산하기도 한다. 조금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기업은 언제나 개발자를 '돈 먹으면 작업물을 뱉는 작업자 A'라고 본다. 성과물이 좋은 작업자는 돈을 좀 더 먹고, 성과물이 별볼일 없으면 돈을 덜 먹는다. 그 뿐이다. 그리고 기업이 필요에 의해 성공 신화를 만들어야 할 때, 개발자들이 '큰 성과급을 받았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까보면 또 그렇지 않다.

불법 복제의 문제나 아이템 가격의 문제는 그래서 실제로 개발자들과 관련이 없다. 개발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 기업이므로, 기업이 감소하면 개발자들이 감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개발자들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높이는 '시장의 기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내게 깊이 와닿지 않는다. 마치 대학생들이 삼성을 옹호하듯, 실질적인 이해 관계가 없고 오히려 장기적,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이 더 큰데도, 표면적인 사실들로 그 이면을 환타스틱한 무지개 빛 세상으로 착각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 대한 단기적인 우려를 하자면, 이 이야기가 "그래서 불법 복제를 하나 안하나 상관 없다!"는 건 아니다. 그건 독자 당신의 문제인 거다. 훔친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가슴 펴고 활개할 수 있다면, 뭐 좋다. 하지만 언젠가 (저작권법이 개정되면) 콩밥을 먹으면서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거다.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은 당신이 소프트웨어를 소유하는게 아니라 '사용할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불법 복제자들에게 가장 적절한 대응은 "훔친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조용히 숨어 지내라"는 것이다. 활개치면, 언젠가는 잡힌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