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되어가는 게임 플레이
일반 2009/03/07 02:59게임 플레이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 중에서 '게임은 돈벌이'라는 시각이 있다. 흘러다니는 소문에 '내 친구 누구는 어떤 아이템을 팔아서 수백만 원을 벌었다더라'는 이야기들이 있고, 또 흘러다니는 소문에 이런 게임 아이템 장사가 돈이 된다하여 전업으로 나선 사람도 있다면서, 게임 하는게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사실 같은 시간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는 현격하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첫 번째로 간과하고 있고, 게임이 노는 것이라는 원래의 의도를 벗어나게 되고 즐거워야할 게임 플레이가 노동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또 문제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는 도중에 생기는 잉여 자원(경제학적 자원이 아니라 게임 요소의 자원)을 다른 플레이어에게 증여하는 건 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게임 안에서 게임 플레이어간에도 남는 자원(아이템 등)을 거래할 수 있으니까, 이 교환의 조건에 '나 대신 숙제 해주기'라거나 '점심 사주기' 같은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의 돈이 자리를 잡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를 노동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카스트로노바고 누구고 게임 외적인 시각에서 게임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야 그들이 뭐라던, 내가 보기에 게임을 노동으로 만들고 있는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건 게임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 재화를 쌓는 것이 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돈을 버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는 왜 고통이 되는가. 게임에서 게임 요소(contents)를 만드는 작업 시간(기획,프로그램,그래픽 작업 등을 모두 합한 작업 시간)에 비해 플레이어들이 게임 공간 안에서 소모하는 시간이 훨씬 빠르기 때문에 새로운 추가 게임 요소가 도입되기 전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최대한 게임 요소들을 소모하는 시간을 늦추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이 둥지에 입 벌린 새끼 새들처럼 징징대는 걸 원천적으로 막은 게임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게임 요소들은 굉장히 고난이도의 계단을 반복 시도를 통해 극복하는 형태나 혹은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하는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플레이어들은 이 요소들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듯한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행동의 당위성을 잃기도 할 뿐 아니라 게임 플레이 목적 자체를 상실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플레이어들이 이런 반복 시도와 시행 착오를 좀 더 쉽게 달성하려고 생각하게 됐고 여기에 현실 가치를 가진 화려한 댓가들을 제시하면서, 공급과 수요가 만들어지고 소위 말하는 아이템 현금 거래 시장이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반복 플레이와 편법을 찾는 플레이어들 사이의 악순환 안에서, 근본적으로 플레이어들이 좀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반복 플레이 자체를 반복이 아닌 것 처럼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반복이 반복이 아닌 것처럼 만드는 방법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무작위화(randomize)와 플레이어들이 만들어내는 게임 요소들이 가장 적절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그 류(rogue-like) 게임들이 흔히 사용하는 무작위 지도들은 플레이어가 같은 지역을 계속 반복한다는 지루함을 줄여준다는 것이 이미 검증되어 있고 - 3D 공간상의 구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 또 '명분을 제시하는 이야기(narrative)'를 무작위화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점이라는 퀘스트의 경우도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부여하거나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보상들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어들이 정부를 구성하도록 한 게임도 있고 가상 공간 안에서 직접 게임 요소를 만드는 행위들이 이미 시도된바 있고, 이 작업의 변화와 난이도만 낮출 수 있다면 반복 플레이라는 부작용은 충분히 감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작업을 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게임 산업의 고질적인 '벤치마크'에서 만들어진다. 새로운 게임 요소를 만들어서 시장에 도전하는 것을 '병신 짓'으로 취급하고 기존에 검증된 게임성이 있으면 '일단 우리도 같은 걸 만들어 다리 걸치고 보자'는 식의 산업 환경, 작업자를 만들어내기를 우선할 뿐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는 개발자 양성 환경 등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얼마전 한 게임 개발자 교육 기관에서 공모전에 출품한 게임이 PSP의 한 게임을 표절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전엔 어떤 교육 기관 출신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학원에서 제공한 라이브러리를 그대로 써서 껍데기만 씌웠다'는 면접관의 폭로도 있던 걸 생각하면, 과연 언제나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총 균 쇠'에서는 잉여 자원을 먹으며 노는 계층이 문화를 발전시킨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아구닥닥 돈벌이에만 급급한 우리 모습에 비추면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