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와 액티비전이 합병을 했다고 한다. 블리자드가 비벤디 산하로 들어간지도 어언 10년이 되어가는데 비벤디의 수작으로 액티비전과 합병을 하기는 하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들 말로는 '이제 월드 오브 콜 오브 듀티 나오는 거냐'는 둥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지만, 아마 두 회사가 프로젝트를 합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블리자드와 액티비전이 마치 스퀘어와 에닉스의 합병에 견주어지기도 하지만, 액티비전이 최근 개발사이기 보다는 퍼블리셔로 자리를 잡는 것 같아서 아마 새로운 유통망 확보 정도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시즌이 시즌이라, 합병이라는 걸 가지고 우리쪽 분위기와 바다 건너쪽 분위기를 비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한국의 회사들은 합병을 하고 나면 흡수한 쪽에서, 혹은 좀 더 돈이 많고 주도권을 쥔 회사(A) 쪽에서 흡수당한 회사(B)에 낙하산을 내려보낸다. 뭐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던가 인재 교환이라던가 별의 별 명목이 붙겠지만 사실 감시역할이라고 보는게 맞겠다. 그리고 이 낙하산 요원은 B회사의 프로젝트에 이제 사사건건 개입하기 시작하고, B는 애초에 합병될 값을 올렸던 B의 장점을 고스란히 잃어버리게 되고, B의 핵심 멤버들은 환멸을 느끼고 회사를 빠져나간다.

B의 창업자들은 합병시 받은 주식을 팔아 떼돈을 챙기고, 계약된 기간 동안 B에 머물다가 회사를 그만둔다. "잠시 쉴려구요."라면서. 그리고 한 2년 쯤 있으면 그 B 회사의 멤버들이 이합집산해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사실 업계의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새 회사를 만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B는 핵심 멤버들도 다 빠져나갔고, 기술이라고는 단지 도큐먼트와 프로그램 소스만 남아있는 쭉정이가 되어 A 회사의 한 사업부로 이름만 유지하며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존재가 된다.

많이 본 시나리오지 않은가. 중소규모 회사들이 게임을 하나 크게 대박내고 나서 대기업에 합병된 뒤의 시나리오는 대충 이렇다. 그런데 같은 예를 미국의 회사들에다가 비추어 보자.

렐릭은 합병이 되고 나서 알렉스 가든은 곧 떠났지만, 그의 밑에서 같이 원년 멤버이던 사람이 대표 자리를 이었다. 렐릭의 개발 방향은 거의 바뀐 것이 없고 '워해머40K:돈오브워(Warhammer 40K: Dawn of War)'가 출시되어 "역시 렐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E3에서 '컴파니오브히어로즈(Company of Heroes)'를 발표하고 전세계 RTS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오오 역시 렐릭". COH가 나오고 나서도 대표이사가 또 한차례 바뀌지만 여전히 개발 방향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COH의 확장팩 '오포징프론트(Opposing Fronts)'가 나왔고, RTS 명가의 이름은 변하지 않았다.

블리자드는 합병이 되고 많은 개발자가 떠나고 창업했지만, 스타크래프트 이후 꾸준히 '대중적인 게임을 만든다'는 그들의 큰 기조에 변화가 생긴 것은 없다. 기존의 게임들을 분석해서 해당 장르의 최고 게임을 만들어 낸다는 철학은 전세계 게임 개발사들의 좋은 본보기로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고. 게다가, 합병 이후 오리진이 EA에서 겪었던 것처럼 개발 프로젝트의 출시 독촉도 거의 받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받더라도 그걸 어찌나 효과적으로 '반사'해내는지, 개발이 질질끌리더라도 결국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만들어낸다.

한국의 게임 개발사는 사람이 기술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 합병 이후에 사람들이 최대한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이고, 떠나더라도 똘똘하게 키운 후임을 남겨둘 애정을 갖게 하지 않는다. 합병된 회사에는 이미 만정이 떨어져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만 남겨주는 것이 대부분인 거다. 물론 합병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창업자들이야 화기애애할지라도, 개발자들은 얻는 것 하나도 없이 회사가 싫어져 떠나게 되는 거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면서 뭉테기로 나가거나, 후임을 키우는데 관심이 없거나, 후임을 같이 데리고 가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블리자드의 이번 합병은 별로 관심이 없다. 블리자드는 블리자드 대로 제들이 만들던 프로젝트를 계속 할 것이고, 액티비전은 액티비전 대로 제들이 만들던 게임, 출시하려는 게임 그대로 출시할게다. 그런데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면 밥그릇을 걱정해야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이 바뀔 것에 스트레스 받아야하는 개발자들을 생각하면, 블리자드-액티비전이나 렐릭 같은 회사들의 모습이 참 부럽다. 인재를 아낄줄 알고, 키울줄 아는 회사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게임을 계속 만들 수 있는 거겠지만.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