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로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을까
분류없음 2008/09/30 00:43김치 찌개를 끓이기 전에 레시피를 만들고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김치가 얼만큼 들어가야 하는지 설탕간을 할지 김치 이외에 다시다 가루와 송송 썰은 햄과 물의 양을 적당히 조절해서 강한 불로 얼마간 끓이다가 불을 언제 줄이는지를 미리 다 적어놓고 찌개를 끓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나 이 사람이 만들어 놓은 레시피를 보면 이번 메뉴는 김치찌개구나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번에는 김치가 들어가고 갖은 재료에 햄까지 들어가는 김치찌개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이 레시피를 봐서는 맛을 알 수가 없군요. 정말 김치찌개를 잘 끓인다는 소문을 믿어도 됩니까?"
옆에서 이를 보던 난 생각했다. '레시피를 보면 김치찌개의 맛을 상상할 수 있을까?'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들, 이를테면 김치가 덜 쉬었다던지 더 쉬었다던지, 물이 중간에 더 졸았다던지 이런 것들을 중간에 간을 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걸까?
사실 누구나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중간에 간을 봐야한다. 레시피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금 어느 정도 맛이 되었는지, 어떤 재료가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새로운 재료가 들어갈 때마다 간을 보고 재료를 추가해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레시피가 의도한 맛(혹은 거기에 가까운 맛)은 나올지 몰라도 정말 맛있는 김치찌개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치찌개에 있어서 레시피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이런 재료가 들어가서 찌개를 끓인다면 괜찮은 맛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인 거다. 만약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재료가 잘못 들어갔다면 다른 재료를 추가해서 어떻게든 수습을 하기도 해야하는 거다.
좋은 레시피를 만들었다고 그것이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건 얼마나 레시피를 예쁘게 쓰는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어떤 종이에 어떤 연필로 썼는지는 더군다나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결국 김치찌개를 먹을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놈이 나왔다면, 그 사람은 (끓여준 사람의 공도 생각치 않고) 이 찌개를 먹지 않거나 개에게나 줘버리거나 혹은 조리자의 레시피따위는 무시하고 설탕이던 라면 스프던 넣어서 자기 입맛에 맞는 놈으로 고쳐 먹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김치찌개라는 놈은 도대체 언제부터 맛을 짐작할 수 있는 걸까. 레시피가 완성되었을 때? 마지막 재료가 들어간 직후? 모든 재료가 들어가고 나서 적당히 우러났을 즈음? 아니면 찌개를 먹는 사람이 맛을 보고난 그 순간?
알 수 없다.
